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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날과 같이 자기 전 영화를 보았고 영화가 끝난 후 평소와 다르게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이날 내가 본 영화는 일본 영화 '오렌지'다. 


순정 만화를 영화화하였기 때문에 내용은 대부분의 일본 멜로와 비슷하게 약간 병맛(?)이다. 그대로 이 영화가 기억에 남는 것은 바로 영화의 배경이 된 장소가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영화면 보면서 '와~ 저기 꼭 가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이 영화 엔딩은 내 가슴을 뛰게 했다.


검색해 보니 '마쓰모토'라는 작은 마을에서 올로케 촬영되었단다. 그리고 며칠 동안 가는 방법을 물어보고 찾아보니 경로가 좀 복잡하다. 아무래도 가는 길이 고생일 것 같아 아내와 딸이 함께 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 같아 아내에게 양해를 구하고 간곡한 설득 끝에 허락을 받았다.


배틀트립에서 슬램덩크 촬영지나 홍콩영화 촬영지를 가는 방송을 보면서 재밌겠다고 여겼는데, 그 영향 때문인지 나는 여기가 미친 듯이 가보고 싶었고, 여기서 인생 샷을 찍고 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영화 'Orange' 마지막 장면


영화는 내내 아름다운 배경을 보여주는데, 특히 벚꽃이 배경으로 나오는 장면이 많다. 마지막 장면에 카메라 앵글이 언덕에 선 주인공들을 뒤에서 비추며 그들이 바라보는 시선과 배경을 비춰주는데 이 장면이 압권이다.


그래서 나는 벚꽃이 피는 시기에 가려고 알아보니 일본의 중부 지역은 4월 초에 벚꽃이 만개한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우리나라보다 남쪽이니 그때쯤 필 것도 같았다. 3월 31일~4월 3일, 3박 4일 일정으로 사전에 수개월 동안 차근차근 준비해갔다. 날짜가 다 되어서 고맙게도 대학 후배 하나가 함께 가도 되냐고 해서 숙박은 내가 낼 테니 나머지는 부담하기로 하고 함께 가기로 했다.


영화 '오렌지' 엔딩에 배경은 마쓰모토의 코보야마(弘法山 / 코우보산)로 구글 지도에서 보니 고분인 것 같다. 숙소는 구글 지도에서 보고 이곳과 가까운 저렴한 료칸으로 잡았다.

구글 지도에서 보기: https://goo.gl/maps/oRAZzQXhvvN2


마쓰모토에도 공항이 있지만, 일본 국내선만 갈 수 있기에 부산에서 가려면 나고야에 내려 다시 이동해야 했다. 나고야 공항에서 나가노로 이동 후 다시 마쓰모토 행 기차를 타야 하는 긴 여정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인상 깊게 봤던 일본 영화 '대공항'의 배경이 마쓰모토 공항이었다.


부산에서 마쓰모토(마츠모토) 가는 법


1. 김해 공항 - 나고야 공항  (비행 시간 90분)

2. 나고야 공항에서 '뮤스카이' 타고 메이테츠 나고야 역으로 이동 (30분)

3. 메이테츠 나고야 역에 도착해서 밖으로 나와 바로 옆에 있는 JR 나고야 역으로 이동 (도보 5분 이내)

4. JR 나고야 역에서 '특급 와이드뷰 시나노'를 타고 마쓰모토 역으로 이동 (140분)

5. 마쓰모토 역에서 숙소로 이동


부산에서 마쓰모토로 가는데, 항공료 제외하고 순수 일본 내 교통비만 20만 원가량 들었고 김해공항에서 13시 출발하는 비행기를 탔는데, 마쓰모토 숙소에 23시가 다 되어 도착했다. 이렇게 시간과 비용을 써가며 도착한 보람이 있어야 할 텐데 말이다.


열차를 여러 번 이용하게 되는데, 무조건 안내원에게 물어봐야 한다. 노선들이 복잡하고 열차들이 비슷하고 시간대도 전철처럼 많지 않으니 혼자 분석하려 하지 말고 물어보는 것이 가장 빠르다.


JR 나고야 역까지는 이동 시간도 짧고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 시련은 마쓰모토 행 시나노 열차를 타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나가노는 동계올림픽이 개최되었던 곳이다. 나가노의 별칭이 동양의 알프스란다. 마쓰모토 행 열차는 고산지대를 달리기 때문에 열차가 많이 흔들렸고 귀가 먹먹했다. 자동차 외에는 멀미하지 않는데, 약간의 멀미가 느껴질 만큼 불편했다. 무엇보다 빠르게 달리는 차 창 밖 풍경 속에서 쌓여있는 눈을 보고야 말았다. 벚꽃이 만개했을 거라 여겼던 3월 31일이다. 지나고 있는 '이 지역만 그렇겠지…'하며 눈을 감았다.


불편함을 감수하고 2시간 넘게 달려 드디어 마쓰모토 역에 도착했다. 도착하고 나니 가족과 함께 오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푼 가슴을 안고 역사 밖으로 나왔다. "아 젠장~!" 두꺼운 스웨터를 입었는데도, 너무 추웠다. 그냥 여긴 겨울이었다. 배는 고프고 밖은 추우니 찾을 것도 없이 바로 앞 라멘집에 들어갔다. 한국인 손님은 처음 본다는 듯한 젊은 직원~ 짧은 영어도 안 통하고 서로 당황스럽다. 구글 번역기의 도움으로 겨우 주문할 수 있었다.


배도 채웠겠다. 이제 숙소로 이동하면 되는데… 구글에서 보니 걸어서 30분 거리여서 원래는 걸어갈 계획이었으나 밤이고 눈까지 내려 너무 추운데 케리어까지 있으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지하철로 한 코스만 이동하면 훨씬 가까워지길래 지하철을 타고 '미나미마쓰모토'로 이동했다.


아 젠장~ 여기서 두 번째 시련을 만났다. 지하철 한 코스로 순식간에 도착했는데, 미나미 마쓰모토역 주변에는 인적이 없는 허허벌판 같았다. 택시는커녕 지나는 차도 거의 없다. 후배와 함께 난감해하고 있을 때 역사 옆 창고 같은 곳에 주차장 관리인으로 보이는 노인을 발견했다. 영어가 통할 리 만무하고 우여곡절 끝에 콜택시를 불러줘서 숙소로 이동했다. 숙소는 거시서 택시로 5분 거리였다.


밤 11시가 다 되어 저가형 료칸(?) '후카시소'에 도착했다. 일본에 온 기념으로 주변도 둘러보고 먹을 것도 사러, 체크인 하자 마자 밖으로 나왔는데 눈이 내린다. ㅜ.ㅜ 우산을 빌려 인근을 둘러보았다. 여기는 틀림없이 시골이다. ㅡ.ㅡ 다른 볼거리는 없고 특이하게도 허허벌판 같은 곳에 대형 게임숍(?) 같은 곳이 있어 구경하고 나왔다.


후카시소는 TV에 나오는 료칸처럼 노천탕이 있거나 방으로 가이세키를 가지고 오거나 하는 서비스는 없지만, 방도 마음에 들고 공동 목욕탕에서 피로를 풀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 우리를 맞아 준 직원이 매우 친절해서 다시 마쓰모토에 간다면 더 오래 머물고 싶은 숙소다. 직원에게 나의 로망이었던 코보야마가 바로 지척에 있음을 확인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화려하진 않지만, 정갈하여 만족스러운 조식을 먹고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코보야마로 향했다. 다행히 밤새 내리던 눈은 그쳤지만, 겨울 날씨에 벚꽃이 만개할 리 없었다. 덕분에 영화에서 받은 감동만큼은 아니지만, 고생해서 이 먼 곳까지 온 보람은 있었다. 벚꽃이 피지는 않았지만, 그 장면의 배경이 그대로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 'Orange' 마지막 장면아쉬운대로 앱을 이용해서 비슷한 분위기를 내 보았다.


숙소로 돌아와 우리에게 너무나 친절하게 대해주었던 직원과 사진을 찍고 픽업 셔틀 대신 무료로 불러준 택시를 타고 다음 영화 촬영지로 이동했다. 가는 길에 기사에게 물으니 4월 말에서 5월 초에 벚꽃이 핀단다. 아쉽지만,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온 나의 잘못이지 ㅜ.ㅜ 후카시소 직원이 불러 준 택시를 타면서 생각한 건데, 마쓰모토 역 도착하면 후카시소에 차량을 보내달라고 후카시소 차량이 나왔을 것이다. ㅜ.ㅜ


직원이 너무 친절해서 호텔을 예약했던 익스피디아에 극찬하는 후기를 남겼다.



이후에 영화 촬영지를 중심으로 마쓰모토를 둘러보고 마지막으로 마쓰모토 성까지 보고 다음 목적지인 도쿄로 향했다. 이번에 마쓰모토로 가기 위해 조사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나가노 쪽에 좋은 온천도 많고 자연과 함께 휴양하기 좋은 곳이 많은 것 같다. 후쿠오카, 오사카, 도쿄는 충분히 보았으니 이제 마쓰모토와 같이 일본의 깊숙한 곳으로 좀 다녀보고 싶다. 물론, 코보야마의 벚꽃을 보러 꼭 다시 한번 찾을 것이다.


잔인하다. 4월 1일인데 눈이...ㅜ.ㅜ 저 바로 앞에 나무들이 모두 벗꽃으로 물들어야 하는데...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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